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저녁무렵.
손기정 마라톤에서 난생 처음 50분대 초반의 기록을 남긴 엊그제 그날로부터 정확히 5년 전, 비오던 날의 벤쿠버, 난생 처음 교통사고를 겪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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퇴근하고 언제나처럼 버스를 타고 귀가했는데, 그날은 왜 집에서 2정거장을 더 지나야 있는 그 동네에서 길을 건넜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. Fraser st 41st 에 살던 친구를 만나러 가려다 말았는지, 27th에서 내렸어야 했을 내가 멍 때리고 있다 지나쳐서 내렸던 것인지.
시골에서 천방지축으로 자라 왼쪽 무릎 같은 자리에 깊은 상처를 2번이나 낼정도로 험하게 컸지만 병원 입원이나 깁스 따위 해본 적 없던 내가 차에 치였다.
여러 사람이 길을 건너길래 아무 생각없이 따라 길을 건넜는데 하필 그들은 홈리스였고, 길 건너기 전에 눌러야하는 보행자 신호는 눌러있지 않았다. 어쩐지 서둘러 걷더라니. 아차 싶었을땐 이미 차들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발을 굴렸다.
하지만 내가 내린 곳은 사거리, 내 뒤쪽에서 오고 있던 은색 SUV가 내가 있는 쪽으로 코너를 돌면서 빠른 속도로 오고 있었고 치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좀 더 빨리 달리면 될 것도 같아-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오른쪽 손에 꽤 큰 충격이 왔고 그 힘을 그대로 받아버렸고, 옆으로 한바퀴 굴렀다. 그 와중에 살겠다고 멋지게 착지(-_-)하고 어디 다친데 없나하고 봤더니 아뿔사 오른쪽 손이 터져서 시뻘건 피가 뚝뚝. 그제서야 느껴지던 고통.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, 그리고 머리 속에서 미친듯이 지나가는 많은 것들. 아 젠장 앰뷸런스는 타기만해도 150불이라는데, 아 이거 누구한테 먼저 연락해야하지, 이거 병원가서 뭐라고 설명하지, 나 이거 무단횡단일텐데 보험처리 안되면 어떡하지, 아뿔사.
외국에서 보낸 첫 생일을 보낸 뒤였고, 벤쿠버 생활은 이제 꽤나 익숙해! 하던 그 즈음에 겪은 사고는 그야말로 멘붕. 다행히 누군가 앰뷸런스를 불러줬고 구조대원 아저씨는 유머러스해서 고통으로부터 내가 신경 안쓰게 해주려고 농담따먹기를 쉴 새 없이 던져줬고, 병원에서는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지 않도록 친구도 수술 전에 도착 했었다. (하지만 마취된 내 손을 뚫고 지나가는 바늘의 움직임은 아직도 기억한다.)
다행히 내가 그 당시 정황을 다 기억해서(근방에 몇 번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고, 차 색깔이나 차종은 무엇이었고 등) 보험처리며 사후 재활 치료 등을 잘 받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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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오른손에는 손금 아닌 손금(봉합 흔적)이 새로 생겼고 오른쪽 4번째 손가락은 모양새도 이상하고 부자연스럽지만 사고 전처럼 젓가락질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다른 이들의 손도 잘 잡을 수 있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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매년 11월 이맘 때쯤이면 그날의 일이 떠올라, 그 날의 공기와 분위기가 느껴진다.
머나먼 타지에서 큰일이 있었지만 한시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해줬던 내 손바닥의 상처.
참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에 실비보험 서류 떼러 갔다오는 길에 5년 전 이맘때쯤 사고가 생각나서 사진을 찍은 것이 이렇게도 긴 글을 쓰게 만들었다.
(덧, 보험은 진리, 보험은 사랑, 보험은 필수. 워킹홀리데이 보험없이 절대 가지마라)
(덧, 사고 나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된다, 정신 차리는게 어렵다는게 함정)